관광벤처 공모 심사 관련 두번째 제안

어제 첫번째 제안을 통해 관광벤처사업 공모의 ‘지역관광 활성화’ 유형 신설과 ‘전문 영역별 분담 심사 체계’ 도입을 제안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더해 심사 절차 자체의 근본적인 개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행 ‘1차 서류심사, 2차 PT 면접심사’ 구조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업의 본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방안입니다.
수년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반복적으로 목격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습니다. 1차 서류심사에서 완벽에 가까운 사업계획서로 통과한 기업이 정작 2차 PT 면접에서는 사업의 핵심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 사업의 차별점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하거나, 본인이 제출한 계획서의 내용과 상충되는 답변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심사위원으로서 ‘뭐지?’하는 당혹감을 느겼습니다.
사실 안타까운 것은 반대의 경우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창업자 중에는 비록 서류 작성 능력은 부족하지만 탄탄한 사업 구조와 명확한 비전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1차 서류심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글을 잘 못 써서 떨어졌습니다”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현행 심사 제도가 놓치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돠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제출되는 사업계획서들은 대부분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됩니다. 문장은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고, 구성은 논리적이며, 전문 용어 또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우수한’ 사업계획서처럼 보입니다.하지만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 된 화려한 문구 뒤에 숨어 있는 창업자의 실제 역량과 사업 이해도를 서류심사로 가늠하기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지금의 1차 서류심사는 사업의 실행 가능성이나 창업자의 실질적 역량보다는 ‘서류를 얼마나 잘 꾸몄는가’ 혹은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했는가’를 평가하는 장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관광벤처 공모만의 이슈가 아닙니다. AI 활용이 보편화된 지금, 서류심사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공모사업이 동일한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각 부처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창업 및 사업화 지원 공모들이 모두 서류의 겉모습만 화려해지고 실질적 변별력은 사라지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심사 순서의 과감한 재설계를 제안드립니다.
1단계: 사업소개 동영상 심사 – 진정성과 핵심 가치의 검증
각 신청 기업은 3분 이내의 사업소개 동영상을 제출합니다. 대표자가 직접 출연하여 ①자신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②아이템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③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영상 편집이나 화려한 연출보다 투박하더라도 창업자의 눈빛과 목소리에 담긴 진심, 그리고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확인하는 것이 이 단계의 핵심입니다.
현재 관광벤처 공모는 높은 경쟁률로 인해 심사위원이 한 건의 서류를 검토하는 시간이 실질적으로 3분도 채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3분 분량의 사업자 본인이 설명하는 동영상으로 창업자의 진정성과 사업 이해도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합니다. 동영상 심사를 통해 서류심사 대상 기업을 최종 선발 예정 인원의 5배수 이내로 압축함으로써, 심사위원들이 실질적으로 깊이 있게 서류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2단계: 정식 서류 제출 – 통과 기업에게만 기회 부여
1단계 동영상 심사를 통과한 기업에게만 상세한 사업계획서 제출 기회를 제공합니다. 5배수 이내로 압축된 만큼, 심사위원들은 한 건당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업화 전략의 구체성과 실행 계획의 정교함을 꼼꼼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업 아이템의 타당성과 창업자의 진정성이 확인된 상태이므로, 서류심사의 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습니다.
3단계: PT 면접심사 – 심층 전략의 최종 검증
동영상과 서류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최종 PT 면접을 통해 세부 실행 전략과 팀 역량을 깊이 있게 평가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이미 창업자의 진정성과 기본 역량이 검증된 상태이므로, 심사위원들은 보다 전략적이고 심도 있는 질문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 개편은 신청 기업, 심사위원, 주관 부처 모두에게 의미 있는 개선을 가져옵니다.신청 기업의 입장에서 방대한 분량의 서류를 작성하기 전에, 자신의 아이템이 공모 취지에 부합하는지 먼저 확인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고, 통과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더욱 정교한 사업계획서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3분 이내의 동영상 제작은 두꺼운 사업계획서 작성에 비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심사위원의 입장에서는 수백 건의 서류를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급하게 검토하는 현재의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동영상으로 핵심 가치를 빠르게 파악한 후, 5배수 이내로 압축된 기업들의 서류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밀하게 검토할 수 있습니다. 심사의 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것입니다.
주관 부처의 입장에서는 심사 전반의 신뢰도와 공정성이 향상됩니다. 사업자의 실제 역량과 사업 이해도를 사전에 검증함으로써 지원금이 진정한 혁신 기업에게 전달될 가능성을 높이고, 선정 기업의 사업화 성공률 또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높은 경쟁률 속에서도 공정하고 정확한 심사가 이루어졌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동영상 촬영과 발표에 익숙하지 않은 창업자들이 불리할 수 있다고 우려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안드리는 동영상 심사의 핵심은 영상의 완성도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창업자의 ‘내공’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단순한 영상이라도 대표자가 자신의 사업을 얼마나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얼마나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3분 안에 충분히 드러납니다. 진솔하게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고 자신의 언어로 솔루션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도록 기준을 정하면 됩니다.
관광벤처사업 공모는 단순히 예산을 배분하는 행정적 절차가 아닙니다.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혁신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적 투자’입니다. 그렇기에 선발 과정에서 사업자의 진정성과 실제 역량을 정확하게 검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동영상 우선 심사의 도입은 AI 시대에 부합하는 심사 방식의 혁신이며, 형식보다 본질을, 겉치레보다 진정성을 중시하는 가치 지향적 변화입니다. 동시에 높은 경쟁률 속에서도 심사위원들이 실질적으로 깊이 있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현실적인 해법이기도 합니다.

